STUDIO126 
박정근 개인전 《바다, 애도》

권주희(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삶을 제대로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충분했다는 확인과 인정을 내 삶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행위다. 생의 부재에 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검증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채, 삶을 잃어버리는 사태는 남겨진 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의 죽음이 한(恨)으로 남지 않으려면, 내가 어느 대상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는 후회와 미련이 없음에 가까울수록 그 관계가 충분했다고 인정하게 된다. 

박정근 작가는 2012년 제주에 정착해 다년간 섬 속에 나타난 삶과 죽음을 위로의 감정으로 제시해 왔다. 2023년 스튜디오126에서 진행한 개인전 《사소한 위로》에서는 희권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삶의 터전, 바다를 따라간 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다채로운 빛깔을 담은 <바다> 작품들은 희권 할아버지의 바다가 고되지만은 않았다고 전하는 위로의 제스처였다. <바다> 시리즈 중 일부는 이번 개인전에서 공간 초입에 자리하며 확장된 개념을 매개한다. 작가의 지난 개인전과 현재의 개인전 사이, 생을 마감한 할아버지를 떠올려 보면, 과거의 위로가 현재의 시간에서는 애도로 남겨진다. 

작가의 동일한 작업이 시간을 달리하며 그 의미가 한걸음 옮겨지듯 우리의 풍경과 시대에 관한 해석도 다르지 않다. ‘애도’란 삶 혹은 쓸모를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최소 혹은 최대의 의례를 일컫는다. 희권 할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애도는 제주라는 섬과 이 섬에서 시작되어 흘러간 시간에까지 이른다. 즉, 박정근 개인전 《바다, 애도》는 제주라는 섬을 감싸고 있는 바다, 그로부터 이어진 삶들을 다룬다.

<Echos of Fragility_깨지기 쉬운 섬세한 것들의 메아리>는 비가시적인 소리를 가시적으로 변환한 영상과 사운드 작업이다. 인간의 필요로 발생하지만 인간은 온전하게 지각하지 못하고 비인간의 삶에는 존재하는 소리를 확대했다. 섬 밖에서는 천혜의 땅이라 일컫는 제주는 상대적으로 자연의 존재가 돋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인공물이 혼재한다. 작가는 이곳에서 가장 크고(풍력 발전기), 높고(비행기), 많은(집) 인공물에 주목해 그와 연관된 소리를 채집하여 자연과 병치시킨다. 익숙한 풍경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간만이 삶과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비인간의 존재들 또한 삶과 행위의 주체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비인간은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공진화하며, 개별적이 아닌, 관계적 존재임을 우리의 눈과 귀로 체감하게 한다. 임마누엘 칸트가 지구의 민족들 사이의 공동체에 대해 언급하며, “지구상의 한 곳에서 일어나는 권리 침해는 모든 곳에서 느껴진다.”라고 강조했음을 상기시킨다.

제주의 ‘소리 풍경’은 해류를 타고 <바다, 애도>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2채널로 구성된 영상 작업은 4·3과 기후 위기를 ‘재난’이라는 주제로 관통하며 제주도와 대마도를 가로지른다. 같은 사건을 경험한 주체에 따라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관점은 증언을 기반으로 전달된다. 무엇보다, 제주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대마도까지 이어진 사실과 그곳의 사람들이 마주하고 실천한 행위를 통해 우리의 사유 방식과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 ‘희생자’를 사건의 ‘당사자’로 규정하는 것도, 현재에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과거를 실감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현장을 찾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기하자는 주장도 국경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무색하게 한다. 막연하지만 우리는 무한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어떤 죽음에도 누군가의 책임이 존재하며 누군가는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모두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겸허함을 느낀다. 박정근 작가는 4·3과 기후 위기를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맥락적으로 동등한 곳에 위치시키며 인간의 자행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비유한다.

그의 작업은 제주가 지닌 역사와 시간,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시대에 비추어 사유하는 계기가 된다. 포스트 휴먼 사회에서 존엄이라는 개념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동물, 자연, 기술,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에게 인정된다. <어쩌면 유물이 될지 모를> 유리 건판 사진 작업은 비인간에 대한 사유가 함축된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쓰레기라고 일컫는 물건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재조형되었다. 1871년 영국에서 처음 개발한 사진 인쇄 방식이 현존하듯 현재 인류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재료들은 미래에 어떠한 입자로 남겨지게 될까. 케냐의 나이로비 단도라 지역에는 매일 도시로부터 나오는 플라스틱, 유리, 금속, 음식물 쓰레기를 폐기하는 폐기장이 있다. 이곳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 현재는 위성 이미지로 확일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부지 전체에 걸쳐 수십 미터가 쌓여 있어 그 자체로 지질 층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건은 인간의 자취와 함께 시간을 담지한 하나의 지층으로 기록될 것이다. 인간의 초상처럼 쓰레기를 하나의 피사체로 동일하게 기록하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을 상호인정의 원리 위에 위치시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인간 존재들의 영역으로 존엄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이다.

박정근 개인전 《바다, 애도》는 제주에서 시작된 나비효과의 다양한 서사를 마주하게 한다. 인간의 무심한 행위는 비인간의 삶으로, 은폐하려던 역사는 해수면을 타고 다른 섬으로, 뜻밖의 행위는 누군가에 대한 애도로 흐른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소한 행위가 어딘가에 닿는 의미, 그리고 그것이 되돌아오는 결과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제주에서 파생된 이야기는 이 작은 섬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이 시대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인류세에서 주지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뿐만이 아니라 내 삶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때, 최소한의 후회만을 남길 수 있는 상태, 존재를 위한 존엄의 사유로 삶과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곧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의 삶일 수 있다.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은 『만프레드(Manfred)』(1817)에서 인간의 삶이 시대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행동이 곧 시대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죽음’에 대한 책임을 다각적으로 사유하며 실천하는 것은 과거를 조망하고 확인할 수 있는 행위이며 좀 더 나은 시대를 조형할 수 있는 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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