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박정근
인간과 자연, 그 이동과 욕망

제주는 생태가 독특하여 육지 사람들 눈에는 신기한 것이 많은 땅이었다. 1105년 탐라국이 고려에 복속된 후 전복, , 탱자 등 제주에서 나는 좋은 것들은 특산품이 되어 육지로 끊임없이 진상 되었다

땅은 척박했다. 화산이 만들어낸 땅은 물이 고이질 않아 벼농사를 짓기 어려웠고, 수많은 돌을 골라내 힘겹게 밭을 일구어야 했다. 섬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지만, 육지에서는 특산물 외에 사람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꺼렸다. 여기 사람은 섬에 남아 특산물과 노역으로 납세의 의무를 져야 했다. 없는 처지인 이웃끼리 등을 맞대고 호된 시절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받지 않던 육지는, 오히려 이따금씩 사람을 보내왔다. 바다로 육지와의 연결이 끊겨 헐벗고 거친 땅에 내동댕이쳐지는 유배는 대역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이었다

시절이 바뀌었다. 모두가 꺼리던 이 섬은 경치를 보기 위해 애써 찾는 땅이 되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실시되면서 제주가 관광산업으로 특화되면서부터다. 이 땅의 독특한 자연은 그대로였지만, 먹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그 용도가 바뀌었다. 먹을 것은 배에 실어 육지로 보내면 되었다. 하지만 깊고 옅은, 푸름의 무수한 채도를 펼쳐둔 바다와, 나지막이 봉긋봉긋한 오름은 올려 보낼 방도가 없어 사람이 내려와야 했다. 관광지역으로 지정되자 제주는 육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경관을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국적인 풍경을 더하는 선인장, 야자나무 같은 생물도 들여왔다. 그리고 인식 속에서 형성된 자연의 이상향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을 섬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자연의 소비를 통해 거두는 이익의 종착지는 지금까지 몇 차례 달라졌다. 처음은 국가 경제발전의 시동을 거는데 부족한 자본을 보충하기 위한 외화벌이로 시작했다. 이내 내국인의 고급 여행지로 전환되면서, 경제발전의 본격화로 새롭게 형성된 중산층이 제주를 여행하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제주 관광업계는 호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어 이국적 자연 감상을 위한 선택지가 많아지자 제주의 인기는 시들해 졌다. 제주는 세계화 물결 속에 열린 시장에서, 이 섬의 자연에서 여전히 자본 축적의 가능성을 보는 외국 자본에로 눈을 돌렸다

예전에 전복이나 말에 대해 육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주에 발을 들인 이들은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가지고 싶어 했다.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마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제주의 땅을 손에 넣어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잠재적인 방문객이나 거주민을 대상으로 판매할 관광상품이나 주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대규모 시설을 건축하려고 그 자리를 지키던 자연을 밀어버리면서, 주변의 자연경관은 상품에 끼워 팔아 수익을 불렸다. 국내 자본이나 외국 자본이나 매한가지였다

제주의 자연은 천년보다 오래 거기 있으면서 묵묵히 내주는 모양만 보였다. 그래서 그것 밖에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알았다. 허나 자연은 가만히 앉아 변형을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이 뒤엉켜 질펀하게 싸우느라 문을 닫아 건 사이, 완공을 코앞에 두었던 호화 주거지는 터에서 내쫓겼던 이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다. 제주 바닷물을 머금은 바람과 해,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풀들과 벌레는 우아한 마감재를 기다리던 실내를 가득 드리웠고 계단과 난간은 녹으로 헐어버렸다. 제주의 땅에서 태어난 收復軍(수복군)이 진격하고 있었다
                                    은밀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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