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리용사_오태경_2018_Pigment print_145x110cm_박정근ⓒ

잃어버린 마을_2018_Pigment print_145x110cm_박정근ⓒ

잃어버린 마을_2022_Pigment print_145x110cm_박정근ⓒ

여자 생각 않나게 하는 담배_2022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동굴_2022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세상에 없는 꽃_2022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예미산_2022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오름_2023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제주항_2022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백마고지_2023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정뜨르_2022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잃어버린 손가락_2022_Pigment print_140x100cm_박정근ⓒ

2024. 4.3평화공원 전시

엿가락과 담배연기
박정근
할아버지는 엿과 담배를 좋아하셨다. 뜨거운 여름날 사방으로 휘어지던 엿가락과, 할아버지의 코인지 입인지 혹은 눈이었는지 모를 곳에서 스미어 흩어지던 담배연기의 끝에는 뜻밖에도 한 국전쟁이 있었다. 제주 4・3이 궁금해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오태경 할아버지는 제주 4.3 피해자이자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다. 할아버지가 경험하신 ‘역사’ 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투와 수난의 ‘역사’와는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다. 전쟁에도 일상과 희 노애락이 존재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대의와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 속에 가려진 인간이 존재했다. 첫 전투에서는 피와 죽음이 무서워 덜덜 떨었지만, 점차 ‘나라를 지키는’ ‘군인정신’이 들어 무섭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할아버지는 강조하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투 이야기가 무르익어 살육이 연상될 즈음이 되면 할아버지는 화제를 급 전환해 꽝꽝 얼었던 차디찬 주먹밥과 주머니에 넣어두고 조금씩 뜯어 먹던 커다란 건빵, 미군 들이 건네준 너절한 옷가지와 같은 말랑말랑한 일상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다. 왜 하필 매번 그 순간이었을까. 할아버지의 난데없는 서사 전환은 까맣게 지우고 싶었던 끔찍한 기억을 너 무나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기억으로 덮고 싶었던 <무의식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 정체성은 역설적이었다. 4・3에서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한국전쟁에서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용사였다. 엇갈리는 정체성은 ‘국민을 지켜주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 나라에 대한 비난’과 ‘지켜야 했고 잘 지켜낸 나의 나라’라는 상반된 감정의 공존과 부딪침을 동시에 가져왔다.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전쟁도 양면적이었다. 국가가 지시하는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 들은 고귀했고 영웅적이었다. 하지만 4・3 피해자들에게 전쟁은 사악하고 끔찍했다. 반대도 동시에 성립했다. 한국전쟁은 사악하고 끔찍한 일이었지만 4・3은 고귀하고 영웅적이기도 했 다. 할아버지에게는 이 모든 것이 혼재하며 뒤섞여 있었고, 한국전쟁과 4・3 역시 별개의 사 건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기억의 역설은 나에게 질문으로 돌아왔다. 당시를 살았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닫혀 있는, 이미 완료된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할아버지에게 전쟁은 현재의 경험이자 여전 히 구성 중인 이야기였다.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전쟁은 나에게도 또 다른 형태의 현 실로 떠올랐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해 벌어진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분단과 휴전을 만들어낸 전쟁이라고 역사의 연대표에 뚜렷하게 기입된 (혹은 그렇다고 믿었던) 한국전쟁은 이제 나와 다른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1950년의 할아버지가’ 누비셨던 전국의 전장을 ‘2021년의 내가’ 되밟아 찾아갔다. 연결고리 는 할아버지 기억의 닻이었던 몇 가지 사물이었다. 할아버지가 숨어서 마음을 졸이고 있던 마 차리의 나무였고, 전쟁 중에 한 마을에서 얻어먹었던 따뜻한 소고기 국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가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던 경주를 찾아서는 안압지와 왕릉을 닻으로 삼아 할아버지 가 치료를 받고 산책하시던 1950년 경주의 지도를 그렸다. 할아버지가 전투를 치렀던 강원도 예미산을 올라 흙을 밟고 돌을 하나 하나 돌아보며 마음을 끄는 것들을 수집했다.
오태경 할아버지는 전장에서 자신을 위로했던 사물로 엿과 담배연기를 꼽으셨다.
엿가락을 반으로 ‘똑’ 부러트려 단면을 본 적이 있는가. 겉으로 보기에 단단한 엿가락에는, 조 청을 길게 늘였다가 다시 겹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엿으로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정 형, 비정형의 무수한 공기구멍이 들어차 있다. 빨대삼아 불면 반대편으로 바람이 제법 세게 나올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려 공기가 들고 난다. 담배연기는 입과 코로 스며 나와 출처를 알기 어렵고 주변의 사물로 퍼져 경계를 뭉그러뜨린다. 주변 사물, 현상과 사건에 대한 우리 의 인식도 엿가락과 담배연기와 같다. 얼핏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호하게 뒤엉켜 있어 명확히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없다.
엿가락과 담배연기는 성형이 쉽기도 하다. 여름 한 낮, 엿은 깔끔하게 반으로 잘라지지 않지 만 쉽게 휘기 때문에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담배연기는 얼굴의 어느 부분이 출처인지 정확히 특정할 수 없지만 마음먹으면 구름을 입 속에서 띄어 내보낼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일부 요소를 선택적으로 강조하거나 지워버림으로써 (비)의도적인 미화까지 가 능하다.
아군과 적군
제주 4・3과 한국전쟁 일상과 전투
가해자와 피해자 군인과 민간인
용맹과 무력함 희노애락과 이념 1950년과 2021년 할아버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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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과 한국전쟁 일상과 전투
가해자와 피해자 군인과 민간인
용맹과 무력함 희노애락과 이념 1950년과 2021년 할아버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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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식 속 사물, 사건, 인물은 엿가락과 담배연기처럼 경계가 모호해서 구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가변적이어서 상황에 따라 이리도 저리도 돌려 입어 나를 방어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엿과 담배연기의 물성(物性)은 정의짓기와 경계짓기에 익숙한 우리의 실제를 말한다. 과거, 현 재, 미래의 모든 사건과 사물은 결국 ‘짓기’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