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숨_화석이 되어버린 해녀 불러내기_2014_Pigment print_145x110cm_박정근ⓒ






물숨_2014_Pigment print_145x110cm_박정근ⓒ

2018 스페이스22(서울) 전시

2021 오백장군갤러리(제주)전시

2021 오백장군갤러리(제주)전시
해녀 삼촌의 오늘, 신화를 걷어 낸 초상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동어 반복의 빈곤함
아무런 장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호흡만 이용해 깊은 바다 속을 터전 삼는 이들의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풍요로우나 거친 바다는 그곳을 누비는 해녀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동일시되곤 한다. 우주 개발을 이야기하는 현란한 문명의 시대에 자연과 순응하며 밥벌이를 이어 나가는 아날로그식 삶의 풍경은 얼마나 조화로운가.
인간과 세상에 대해 각별히 호기심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해녀를 기록하고 싶어 하는 일 또한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눈에 익은 아름다운 장면들, 특히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풍습을 사진 안에서 다시 새롭게 보여 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바다와 여성과 물질이라는 말의 조합은 이미 강렬해서 한편으로는 소재주의라는 선입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자체로 존재감이 넘치는 대상에 기대거나 주눅 들지 않으면서, 기존에 이미 촬영한 사진들과 차별화하는 일은 사진가가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는 도전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물질의 역사에 비해 해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진은 많은 듯도 하고 적은 듯도 하다. 이 무책임한 표현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해녀에 관한 사진은 제주 지역 사진가에 의해 주로 기록되다가 1990년대 이후 확산되어 나갔다. 그들 중에는 해녀와 시나브로 친해짐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집단의 동의와 승인을 구한 진정성 있는 외지 사진가도 몇몇 있으나 대다수는 해녀의 삶을 훔치듯 짧게 훑어 내는 일에만 급급했다.
사진 인구가 늘어날수록 해녀는 이런 방식으로 제주의 아이콘으로 굳어져 갔다. 아이콘은 반복 재생산됨으로써 점점 신화화되는 함정에 빠진다. 아이콘으로서의 해녀는 초자연적이며 그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라 어머니의 생활력이 길러 낸 것처럼 부각되었다.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의 모습에서 가장 상징적인 대목을 부각했지만, 반복되다 보니 그 신화는 점점 과장처럼 느껴졌다. 특히 물질하는 인구가 줄어들면서 해녀는 이런 모습으로 더욱 빈번히 매스컴에 등장했다. 사라져 가는 사람들에 대한 향수까지 덧대어 그들을 현실과 먼 다른 세상 사람처럼 미화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해녀에 대해 다양한 사진을 보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은 대개의 이미지가 동어 반복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보지 않아도 본 듯하고, 많이 보아도 이미 본 장면처럼 새롭지 않게 돼 버렸다. 그런 점에서 해녀에 관한 사진은 많은 듯 적다.
박정근이 4년 가까이 제주에 머물며 해녀에 관한 작업을 했다고 말할 때 의아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익숙하다 해서 금기시할 이유는 없지만, 해녀라는 존재의 무게가 유행처럼 스쳐 지나갈 만큼 가볍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하필 다른 이들의 작업과 차별화하기 어려운 해녀를 기록했을까. 더욱이 그가 2012년 제주로 떠나기 전에 선보인 작업은 해녀를 기록한 일반 다큐멘터리 사진과 사뭇 거리가 있었다. 그 전작과 해녀 작업 사이에서 박정근의 작가적 문제 의식에 관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는 있는 것일까.
나를 구성하는 공간
박정근의 전작 ‘나를 구성하는 공간’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연출한 사진이다. 그는 과거의 기억과 연관된 장소를 찾아가 그 공간에 놓인 자신을 촬영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나 젊은 날의 자취방처럼 일정 기간 머문 곳부터 짧지만 특별한 기억이 얽힌 숲이나 사막 같은 여행지까지 그 장소는 다양하다. 그런데 사진에 그가 등장하는 방식은 여느 자화상과 거리가 있다. 보통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자화상은 인물의 비중을 키워 스스로를 낯설게 대면하는 형식을 취하는 데 반해, 그는 대부분의 장소에서 보일 듯 말 듯 작고 흐릿하게 자신을 위치시킨다.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뒤섞이는 기억의 부정확성 혹은 부정하고 싶은 과거의 상처나 붙들어 둘 수 없는 아쉬운 경험을 이런 식의 거리 두기로 형상화한다. 이를테면 여행 중에 머문 베이징의 호텔을 찾아가 창밖으로 몸을 내민다. 카메라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는 애써 찾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작게 도시의 일부처럼 붙박여 있다. 그런데 유심히 바라보면 밖을 향한 그의 몸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신체를 무장해제하는 일은 기억의 장소와 완전히 대면하지 못하는 자신의 소외감과 이질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반대로 그 장소가 전해 주는 기억을 온몸으로 소환해 내고자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일 수도 있다.
여기서 궁금한 건 카메라의 위치에서 그를 바라본 시선의 주체다. 구도와 노출 등 모든 시각 구성을 작가가 직접 챙기기는 했으나 과연 누가 셔터를 눌렀을까. 비록 제목에서는 ‘공간’을 강조하지만, 사실 공간이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등장인물에 따라 얼마든지 분위기를 바꾸는 유동의 장소다. 말하자면 그가 찾아간 과거의 모든 공간은 특정인과의 어떤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다. 나를 구성하는 공간이란 그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의 퇴적층이 나를 구성한다는 말쯤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셈이다.
작가가 작업을 핑계 삼아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때 이제는 일어날 수 없는 그 사건과 만나기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촬영지로 떠나는 과거 시간여행에 당시 사건의 동반자와 동행해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한다. 부연 설명을 듣지 않고 사진만으로 이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일련의 과정은 작가에게 과거의 사건을 통해 온전히 스스로를 성찰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과거에서 현재의 시간으로
자신에 대해서조차 확신하기 어려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던 그가, 이제 시선을 밖으로 돌려 강인한 여성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해녀를 기록한다는 것은 꽤 결이 달라 보인다. 해녀는 아주 섬세하게 내면 상태로 접근하기에는 이미 견고한 집단의 표상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풀어헤치기란 수월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애초 그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박정근이 개인 사정으로 제주에서 살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곶자왈의 신비로움이나 아직도 다 들춰 내지 못한 4·3항쟁의 상처를 다뤄 볼 요량이었다. 그때만 해도 해녀는 너무 익숙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보내는 날이 많아질수록 실제 해녀의 삶이 아니라 그들에게 입혀진 기존의 이미지들이 해녀를 상투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지 않은 섬에서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해녀와 마주쳤고, 그들에게서 역경을 헤쳐 내는 강인함을 넘어선 또 다른 활기가 전해졌다. 직접 만나는 해녀는 뭍에서 보고 듣던 해녀와 한참이나 거리가 있었다. 현실의 그녀들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고 그러므로 당당했다. 부지런하고 엽렵한 생활력은 해녀 특유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의 능동적인 모습에서 전문 잠수사이자 평범한 주부의 면모가 교차했다.
박정근이 보기에 해녀에 관한 기존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비록 진지하고 애정 어린 작업이라 할지라도 현재라는 시간성이 결핍된 느낌이었다. 기록된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의 간극 속에서 신파를 거둬 낸 있는 그대로의 해녀를 드러내고 싶은 작가의 바람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제주에서 해녀만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시절에 따라 광목천에서 고무로 물옷의 재질이 바뀌듯 물질 하나로 가정을 일으키고 자식들을 키워 낸 해녀들의 고달픈 인생사도 세대 교체를 겪다 보면 조금 다르게 전개되는 게 마땅했다. 그리하여 전작에서는 현재의 자신을 찾아 과거로 들어갔던 박정근이 해녀들의 세계에서는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 내기 위해 오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촌수가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부르는 제주 방언 ‘삼촌’을 허물없이 해녀들에게 써먹을 즈음 박정근의 작업도 궤도에 올랐다. 다른 사진가들처럼 물질하는 해녀를 좇아 배도 타고 수중 촬영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비중을 물 안과 밖의 일상에 두었다. 그 일상이란 바다에서는 해녀고 뭍에서는 농군인 그네들의 노동 과정이 아니라 물질하는 해녀들 옆에서 관광객이 기념 사진을 찍는 과감 없는 민낯의 현실이다.
설령 관광객들이 바닷가에서 물질하는 해녀를 이국적 풍경처럼 소비한다 해도, 해녀는 더 이상 엽서의 모델로 상품화되던 근대화 시절의 관광 산업 들러리는 아니었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해녀 축제에서 전통 복장을 입고 해녀 문화를 전파하는 홍보 대사를 자처하며, 바다에 들어갈 때는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화장도 빼먹지 않는다. 채취한 전복과 소라 중 상당수를 일본에 수출하는 특성상 환율의 시세에 밝을 뿐만 아니라, 환율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함으로써 수산물의 유통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박정근의 사진에서 해녀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다 같이 에어로빅을 하고, 술 한잔을 곁들여 저녁 회식을 갖기도 하며, 노래방 뒤풀이로 화끈한 밤을 보내는 작은 마을의 평범한 주부들이다. 사진을 보면 어느 순간에도 해녀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데, 그만큼 박정근이 해녀 삼촌들의 모임에 자주 들락거렸다는 뜻일 터다.
물옷과 물숨
해녀들이 카메라에 익숙해질 즈음 정작 박정근은 클로즈업과 초상 사진을 통해 ‘모던’한 해녀를 향한 시선의 확장을 시도한다. 각각 ‘물옷’과 ‘물숨’이라 이름 붙인 이 연작은 그의 해녀 작업의 2장이자 본론이라 할 만한다. 보통 사진가는 한 소재에서 다른 형식을 같이 선보이지 않으려 한다. 시선의 산만함과 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이 위험 부담을 뚫고 박정근의 해녀 작업에서는 다큐멘터리와 이 클로즈업 작업이 서로를 보완하고 완결한다.
물질 장면을 수중 촬영 하던 어느 날, 박정근은 바위에 몸이 쓸렸는데 다행히 고무 잠수복 덕분에 생채기를 면했다. 대신 너덜해진 잠수복을 본 순간 갑옷과도 같은 물옷의 존재감이 확연히 각인되었다. 각자의 몸에 맞춰 주문 제작 한 물옷은 해녀들에게 분신이나 다름없다. 한 겹의 살이 되어 물속을 같이 드나든 고무옷은 주인의 몸을 따라 뱃살 부분은 접히고 무릎은 관절 모양 그대로 튀어나오며 귓바퀴 모양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해 낸다. 빛바랜 주황빛과 닳고 삭아 갈라진 고무옷의 주름들은 상군 시절을 거쳐 하군으로 늙어 가는 해녀들의 신체 나이를 닮았기도 하다. 박정근은 마치 주물을 떠낸 것처럼 신체의 모든 이력을 기억하는 이 물옷을 클로즈업함으로써 해녀의 몸에 관한 초상을 시도한다.
일상을 기록한 사진이 해녀들이 지니는 노동의 무게감 외의 모습까지 균형을 맞춘다면, 이 물옷의 초상을 통해서는 해녀들이 감행하는 물질의 위엄과 노고를 기념하고자 한다. 바닷바람과 수온의 변화와 반복 동작이 만들어낸 물옷의 무늬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형용할 수 없는 그 추상성의 깊이는 해녀들이 몸으로 완성해 낸 삶의 묵직함이기도 하다.
‘물옷’이 맨몸으로 자연을 일구는 해녀들의 몸에 관한 헌사라면 그와 쌍을 이루는 ‘물숨’은 집단의 표상으로만 다뤄진 해녀 개개인을 호명하는 자리다. 평상시 박정근에게 본인들이 너무 애잔하게 비춰져서 싫다고 말하던 해녀 삼촌들은 그가 시도한 여러 가지 형식 중에서도 바다와 합일하려는 순간에 탄생한 이 초상 사진을 가장 선호했다.
바다에서 들이쉬는 숨이라는 뜻의 물숨, 그것은 곧 생의 마지막을 은유하기에 해녀들에게는 금기어에 가깝다. 그래서 물질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일도 물숨을 마시지 않도록 숨의 길이를 조절하는 법이다. 자칫 전복 하나에 미련이 생겨 마지막 호미질을 포기하지 않았다가는 물숨을 들이킬 수 있기에 자신의 숨의 길이를 아는 것이야 말로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숨이 길어 깊은 물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을 상군이라 하고, 대체적으로는 폐활량이 좋은 젊은 층이 상군을 맡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물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해녀는 그 누구도 없다. 깊이 들어가는 능력과 수확량이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숨이 길다 해서 물숨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바다는 늘 누구에게나 무섭고도 공평한 존재다. 그래서 혹여라도 물숨을 마신 찰나, 아니면 물숨을 마실 것 같은 아찔한 순간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동료들이야 말로 생명의 은인이자 벗이기에 해녀의 공동체 문화는 자연이 가르쳐 준 더불어 사는 삶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박정근의 ‘물숨’은 누구보다도 숨의 끝, 곧 생명이 끝까지를 경험해 본 이들이 이제 숨을 참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러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대한 포착이다. 이 초상은 해녀들과 함께 일궈 낸 공동 작업이기도 한데, 해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를 얻기 위해 그는 바닷가에 비계를 설치하여 올라서야 했고, 해녀들은 그 아래에서 물질을 할 때처럼 숨을 참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제 막 물질을 시작하려는 분주한 시간, 몸이 잠길 정도의 바닷물이 카메라 아래 정지한 해녀의 몸을 흔들어 대면 한두 명의 해녀 삼촌이 더 아래의 바다로 내려가 주인공의 몸을 붙들어 주곤 했다. 누군가 이 과정을 성가시게 여길라 치면, 친한 삼촌은 추임새를 넣어 가며 촬영에 동참하기를 독력했다.
출렁이는 물살은 얼굴 위로 또 한 겹의 주름을 만들고, 물살인지 사람의 얼굴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 지점 위로 부딪힌 빛은 해녀 한 사람 한 사람 존재감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듯 저마다 다른 색으로 산란한다. 그 순간만큼은 박정근이 전작에서 그랬듯이, 이제 막 자신의 바다밭을 찾아 떠나려는 해녀들이 맞이하는 짧으나 숙연한 의식처럼 보인다. 일상에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던 친근함은 오히려 이 초상 사진에 이르러 가식적이지 않게 카메라를 의식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덕분에 박정근은 일상의 촘촘한 기록과 함께 그들을 향한 새로운 시선까지 확보한다.
전작 ‘나를 구성하는 공간’에서 공간의 파편처럼 자신을 위치시켰던 그가 이 초상 사진에서는 정반대의 확신에 차서 해녀의 얼굴과 해수면의 일부만 남긴 채 모든 배경을 생략한다. 해녀를 구성하는 공간인 바다가 실은 해녀로 인해 존재 가능할 수도 있다는 듯이, 혹은 해녀와 바다는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듯이. 해녀의 공간에서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물질이라는 행위의 현재성이 강조된다. 그래서 ‘물옷’이 그들의 신체가 돼 버린 도구에 관한 것이라면, ‘물숨’은 자연이 돼 버린 사람들에 관한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표정도 희미하고 물질의 동작도 숨도 멈춰 버린 초상 사진에서 그들은 비로소 신화화된 가면을 벗고 물질이 직업인 그러나 저마다의 숨비 소리를 내는 한 사람으로 다시 자리매김한다.